지구의 날 네이버 로고 ㅣ 출처 ⓒ구지민 작가 제공

[떡볶이는 맛있음, 근데 지구는?!]

"비 오고, 백수 되고, 웹툰 시작했습니다"

아솔레터

작가님 소개와 함께, [기후위기인간] 웹툰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구지민 작가

2021년에 시작한 웹툰 [기후위기인간]은 제 개인적 경험과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입니다. 현재는 조각 만화처럼 드문드문 그리고 있어요.

원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환경 문제가 제 삶과 직결된 문제처럼 다가왔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코로나가 어떤 문제인지 알아보던 중, 생태계 파괴로 박쥐와 인간이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인수 공통 감염병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감이 오더라고요.

마침, 또 그해에는 50일이 넘게 비가 내렸고, 저는 백수가 되면서 우울감에 시달렸어요. 기후뿐만 아니라 일자리 같은 사회문제까지 제겐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거대한 문제들에 끌려다니는 듯한 감각이 들었고, ‘이 세상이 정말 좋아진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어 안 읽던 책을 펼치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이 결국 한 축으로 이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기후 위기’였습니다.

모든 문제들을 아우를 수 있는 기후 위기. 이 주제를 쉽고 재밌게 웹툰으로 풀어보고자 ‘기후위기인간’이라는 웹툰이 만들어졌어요. 당시 강원도 화천의 ‘예술텃밭’의 기후변화 레지던시에 도움을 받으면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후위기인간 단행본 표지 ㅣ 출처 ⓒ구지민 작가 제공    

"웹툰으로 기후 위기를 말하다!"

아솔레터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셨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께서 [기후위기인간] 웹툰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구지민 작가

제가 이 웹툰을 연재할 당시와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우선 지금은 만화나 예술은 무언가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는 기후 위기와 인간이 사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모두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면 상황이 좋아질 리 없으니, 잠시 멈춰서 돌아보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내 개인적인 문제도 기후 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뭘 해야 한다’라는 당위적인 이야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질문을 던지는 정도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당신의 삶은 괜찮습니까?"

아솔레터

웹툰에서 오히려 ‘맞아 나도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봤는데’,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보니 공감되는데’ 이런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이나 어투에서 강요한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구지민 작가

감사합니다. (웃음) 그런데 주제 자체가 아무래도 어둡고 우울감을 주는 내용이기도 하고, 저도 이 주제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니 지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보는 사람들도, ‘기후 위기가 지금 무슨 문제야? 지금 당장 정치가 문제 아니야?’라거나 ‘먹고 사는 게 급한데 이런 이야기를 할 여유가 있나?’ 그런 반응들이 항상 많아요. 삶에서 기후 위기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해요.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예술이 할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솔레터

다른 매체가 아니라 특별히 웹툰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구지민 작가

3~4년 전만 해도 기후 위기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어요. 환경 교육도 지금처럼 필수가 아니었고요. 그 당시 저는 주로 일러스트나 약간의 애니메이션 요소가 들어간 작업을 했었는데, 전시하면서 느꼈던 한계들이 있었어요.

전시는 특정 기간에만 열리고, 보러 오는 사람들만 관람할 수 있다 보니 전달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한정적이더라고요. 특히, 기후 위기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좀 더 힘이 있고, 보편적 매체인 만화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웹툰 일부 | 출처 ⓒ구지민 작가 제공

구지민 작가

맞아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적지만, 한국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이 1위라고 하더라고요. 에너지 소비가 가장 큰 것이 문제인데요. 한국은 인구 대비 GDP가 높고, 주력 산업이 제조업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철강이나 석유화학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한국은 여러 면에서 기후 위기와 직결되어 있어요.

"기후 위기, 개인만 고생하는 거 아니죠?"

아솔레터

사실 '기후 위기'는 개개인의 노력보다 국가와 기업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작가님은 현재 국가와 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그 노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구지민 작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같은 개념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느냐 하면 아직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총배출량의 40%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기업들이 이 목표를 번복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으니 40%가 아니라 19%로 하자는 식의 논의를 벌였죠.

ESG라는 흐름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거나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워요. 현재 문화적 차원에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노력이 눈에 띄긴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정부와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잘 아는 '파타고니아(Patagonia)' 같은 기업들이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게 현실입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사람은 ‘하지 말라’라고 얘기하는 게 뇌에 입력이 안 된대요. 그래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단순히 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방식은 대중에게도 기업에도 효과가 없다고 봐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녹색 성장’이라는 말로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기업과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되, 개인의 실천과 노력도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기업과 정부도 수많은 개인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니까요. 기업은 제조·생산 과정에서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개인은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지속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노력이 투 트랙으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솔레터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떤 것들을 하면 좋을까요?

구희

사실 이 질문에 뚜렷한 정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접근법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기후 위기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접하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무엇이 문제인지, 왜 중요한지 알게 되면 행동으로 옮기는 데 훨씬 도움이 되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실천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와 관련된 여러 이슈(플라스틱, 육식 소비, 생태계 파괴 등)를 모두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집중해 보는 거예요.

또, 행동하기 전에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신중히 생각하는 태도도 중요해요. 단순히 막연하게 '뭔가 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행동하기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실천하는 게 더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아솔레터

웹툰에서 방 치워놓고 다 버렸는데 ‘나 지금 기억력 3초임’ 그 장면이 생각났어요!

"웹툰 보다가 귀농까지 해버렸습니다만?"

아솔레터

[기후위기인간] 웹툰을 통해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작가님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기억에 남는 사례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웹툰이 바꾼 인생, 귀농한 여성 농부 이야기

강원도에 귀농을 한 한 여성 농부가 저를 강연에 섭외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퇴사하고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제 책 덕분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뿌듯하면서도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예전에 웹툰에서 도시농부 활동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적이 있어요. 흙을 직접 만지고 생명을 키우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았다고 적었는데,  그분이 제 웹툰을 보고 농사를 시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강원도에 땅을 사서 여성 농부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해요. 제 작업이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삶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구나라는 점에 놀랐던 경험이었습니다.

작은 등 떠밈이 때로는 큰 힘이 되기도

또 어느 날은 이런 연락이 왔어요. “안 그래도 현실 도피 중이었는데, 주말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가 기후위기인간 보고 일어났어요. 너무 감사해요.”라고요. 그 에피소드는 무기력증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에피소드예요. 기후 위기는 너무 큰 문제라 작은 개인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 문제를 회피하는 것보다 내가 아는 만큼, 내가 그냥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제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적은 없어요. 그레타 툰베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뭔가 대단한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잖아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정도로 등 떠밀어주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제가 다른 책이나 예술 작품을 봤을 때 힘이 나는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서로서로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작은 걸음들이 모여 결국 큰 힘이 된다고 믿어요. 사실 저도 오늘 조금 우울했지만, 인터뷰 자리 초대해 주신 덕분에 일어나 집 밖에 나왔답니다. (웃음)

*그레타 툰베리 

Greta Thunberg(2003~),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2018년 스웨덴 의회 밖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기후행동을 하며 2019년 세계적인 기후 관련 동맹휴학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기후 위기, 10대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반면, 가끔 가슴 아픈 DM을 받을 때도 있어요. 신분을 밝히지는 않지만, 분명 10대인 것 같은 아이들이 ‘그럼 옷을 안 사면 기후 위기가 괜찮아지나요?’ 같은 DM이 올 때도 있어요. 그런 메시지를 볼 때면, 10대들에게는 이런 문제들을 노출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해요. 앞으로 2050년에 몇 도 올라갈 거라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하지만 아이들도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이기에 위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예술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요.

아솔레터

의미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웹툰과 같이 계획하고 있는 다른 활동이나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세요?

구지민 작가

사실 만화를 그리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웹툰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지 않을까 고민했고, 그래서 몇 년 동안 대외 활동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어요. 하지만 결국 제 자리는 창작이더라고요. 현재는 다른 작품을 진행 중인데, 제가 이야기해 온 기후 위기에 대한 생각이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창작을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는 기후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구지민 작가에게 아트솔루션이란?"

이미 웹툰으로 많은 사람에게 환경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작가님만의 아트솔루션을 만들어가고 계시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아트솔루션’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이 정말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어요. 때로는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 같고, 결국 탁상공론에만 머무를 수 있겠다는 고민도 하게 되죠.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을 되찾아 주거나 미뤄왔던 생각을 불러오는 것은 항상 누군가의 창작물이더라고요. 말은 일회성으로 사라질 수 있지만, 예술은 반복해서 볼 수도 있고,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저에게 변화의 여지를 주는 것은 항상 예술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술은 좀 더 안전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체험하기 위해 실제 산불을 보러 갈 필요는 없잖아요. 예술은 이런 위기를 간접적으로, 더 안전하게 경험하게 하고 상상할 여지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트솔루션’은 굉장히 긴 과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이에요. 유머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한 예술을 만들어 나가는 거죠. 물론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할 순 없으니,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변화를 주면서도, 그 중심은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죠. 저는 그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 주고 싶습니다.

마라 떡볶이를 사랑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이 고민이던 작가님에게 떡볶이는 더이상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채워진 자책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용기에 가득찬 행복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켜야 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 지구, 작가님은 행복한 미래를 위해 좋은 선택과 의미로 삶을 채워나가며 작은 행복의 실천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번외: 기습질문!) 아솔레터 멤버들은 환경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있을까?

사실 환경 실천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동구밭**의 워시바를 사용하거나, 옷을 살 때 리사이클링된 옷을 구매한다는 멤버도 있었고요. 생수를 가능한 사 먹지 않고, 대신 브리타를 사용한다는 멤버들이 예상외로 많았습니다. 또 한 멤버는 한때 비건을 실천했었는데, 좋아하던 편의점의 와사비 맛 아몬드에도 동물성 성분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포기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따릉이와 작은 텀블러를 이용하거나, 탈모 방지용 샴푸가 부담스러워 도브바를 쓰기 시작한 멤버도 있었습니다.

'개인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는 아니지만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진심 어린 마음이 또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작고 사소한 실천과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하나둘 모여,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구밭의 워시바(Wash Bar)는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함께 만든 친환경 고체 세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