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장 넘기기] ‘나 어릴 적에’,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 '나 어릴 적에'는 예비사회적기업 위드달과 인천 수봉도서관이 협력한 세대공감형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어르신들이 예술 워크숍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놀이와 기억을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접 어린이 축제 기획·실행해보는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 2025년 7월부터 9월까지 만 65세 이상 어르신 8명이 매주 수봉도서관에서, 모임을 갖고, '나의 어린 시절 놀이 이야기', '추억의 간식 이야기', '그때 그 놀이 공간 회상하기', '놀이 오브제 제작' 등 총 8회의 예술 워크숍을 함께 했습니다.

✔️ 9월 13일 수봉공원에서 열린 축제는, 실뜨기, 자치기,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를 어르신들이 어린이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함께 체험해 보는 자리였습니다. 어린이, 어르신과 함께 보호자 세대도 참여하여 3세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현장이 만들어졌습니다.

✔️ ‘나 어릴 적에’ 프로젝트는 인천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2025년 사회서비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노인 고립, 아동 놀이 결핍, 세대 간 단절이라는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문화예술 기반 해결 모델로 평가받았습니다.

하나의 축제, 그리고 두 개의 기관

: 세대 간 연결의 순간을 기록하다

아솔레터

나 어릴 적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요. 두 기관이 함께하게 된 계기를 듣고자 합니다.

위드달 심현주 대표

'나 어릴 적에'는 작년에 위드달이 운영하는 인천 주안 쪽 공간에서 시작됐어요. 오래된 구도심 지역이라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시거든요.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수집해서 그림으로 남기고, 그림책이나 영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막상 모아놓고 보니 기록은 쌓이는데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단편적이더라고요. 올해는 '작업을 더 이어가고 싶은데, 이 방식 그대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주변은 재개발로 변해가는데 본인이 사시는 동네만 그대로 남아있다 보니 점점 고립감을 느끼신다는 거였어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인천시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1%, 1인 노인 가구가 36.5%의 고령화 심화 지역으로, 사회적 고립이 우려되는 특성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가 만났던 어르신들 대부분이 1인 가구였어요. '외롭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죠.

'이분들이 조금 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몇 년 전 봤던 유럽 사례가 떠올랐어요. 노인복지관과 어린이집이 같은 건물에서 운영되는 곳이 있더라고요.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미처 다 받지 못하는 '한없는 수용'을 어르신들에게서 받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아이디어와 작년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는 축제를 오랫동안 기획해왔기 때문에, 놀이를 가지고서 두 다른 세대가 함께하는 방법을 떠올렸어요. 어르신들에게는 어릴 적 놀이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도 놀이를 매개로 어르신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축제'로 연결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솔레터

도서관과의 협업은 어느 시점에 시작되었나요? 위드달이 기획안을 준비한 상태로 도서관을 찾아간 건지, 아니면 만남 이후 함께 구체화해 나간 건지 궁금합니다.

위드달 심현주 대표

기획은 이미 있었고, 사업비도 확보해둔 상태였어요. 저희가 운영하는 공간이 미추홀구에 있다 보니, 단체가 운영하는 개별 공간에서만 사람들을 모집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기관과 협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다른 사업을 통해 수봉도서관 사서님을 만나게 됐고, 이게 자연스럽게 계기가 됐어요. 수봉도서관은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고, 사서님이 도서관 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지향점이 저희가 고민하던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어르신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저희가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제안드렸고, 사서님이 흔쾌히 '좋아요'라고 해주었습니다.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전체 구상과 기본적인 설계는 위드달에서 했고, 저희는 협력 기관으로서 어르신들이 오실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참여할 어르신들을 모집하며 함께 운영을 도왔어요.

수봉도서관은 2012년부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하고 있어요. 할머니들께서 이야기 교육을 받으셔서 어린이집이나 도서관에 파견되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죠. 아이들이 할머니들을 정말 좋아하고 잘 따르거든요.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려주고 좋아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사실 자체가 굉장히 기쁘신 거예요.

제가 2022년부터 이 사업을 맡게 되면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브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이야기 교육의 첫 시작이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인천의 미시적인 역사도 담겨 있고요. 제가 알고 있던 인천과는 전혀 다른,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천의 모습들이 나오더라고요. '이걸 영상으로 아카이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나 어릴 적에' 사업을 제안해 주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노인 대상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이야기 할머니'처럼 어르신들이 옛날 놀이나 한자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이미 많이 있어요. 이 프로그램도 얼핏 보면 '어르신들이 옛 놀이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 아닌가?'라고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차별점은, 어르신들이 '예술 워크숍'을 통해 뭔가를 먼저 받아가는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에게 무언가를 건네주는 '기획자'가 된다는 것이었어요.

도서관이 그동안 능력 있는 어르신을 발굴해서 '이걸 해보세요'라고 연결하는 단계에서 끝났다면, 이번에는 위드달이 어르신을 위한 예술·문화 프로그램 커리큘럼을 전부 설계하였고, 어르신들은 그 안에서 다양하게 시도하고 즐기며 자연스럽게 축제를 직접 기획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죠.

아솔레터

‘어르신이 만드는 어린이 축제’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 두 분은 각각 어떤 장면이 떠오르셨나요? 또 어떤 미래를 그리셨나요? 사회적기업으로서, 또 도서관이라는 공공기관으로서 관점은 조금 달랐을 것 같아요.

위드달 심현주 대표

어르신들을 우리는 보통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축제를 같이 만드는 사람으로, 기획부터 실행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특히 어르신들이 저희의 도움 없이도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직접 설명해 주고, 같이 놀이를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과 아이들 사이에는 그 중간 세대인 30~40대 부모님들이 있잖아요. 축제날이 어르신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시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놀이 경험의 시간이 될 텐데, 그 둘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풍경이 제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처럼 그려졌어요.

실제로 축제를 해보니, 아이들보다 오히려 보호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아버지 몇 분은 어르신들과 직접 체험해 보거나 아이에게 놀이 방법을 설명해 주면서 정말 즐거워하시기도 하고요.

우리는 이 축제의 타이틀을 '어르신과 아이의 연결'이라고 붙였지만, 그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30~40대까지 포함한 '3세대의 연결' 구조를 함께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축제 현장에서 그 장면이 실제로 구현되는 걸 보면서, 이 기획이 잘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저는 도서관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거점 공간으로서 정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과 관련이 없던 분들, 단순히 책만 빌리러 오던 분들도 도서관에 온 김에 '나 어릴 적에' 축제를 보고, 도서관 전시도 보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게 되는 거죠.

기획 단계에서는 '예술 워크숍을 통해 어르신들이 축제를 기획한다'라고 들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 나올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실제로 진행되는 걸 보니, 옛 동네를 찰흙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나무나 각종 소품을 활용해서 '내가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직접 재구성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나누시더라고요. 이 과정 속에서 어르신들은 이미 '이걸로 아이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계셨어요.

수혜와 수혜가 계속 이어지는 구조, 문화예술 교육을 받으면서 동시에 축제를 기획하는 주체가 되는 흐름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아솔레터

사회적기업과 공공도서관의 협업 과정에서 역할 분담, 소통 방식, 행정 절차 등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함께 일한다’라는 감각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궁금합니다.

위드달 심현주 대표

사실 애로사항은 거의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공간 사용이나 도서관 밖에서 축제를 진행하는 부분에서 오히려 수봉도서관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거든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저희가 제안하는 내용들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수용해 주었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먼저 '이건 우리가 도와볼게요'라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어요. 보통 행정 절차나 규정 때문에 딱딱해질 수 있는 부분들을, 수봉도서관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함께 조율해 주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리고 많은 협력이 보통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수봉도서관에서 먼저 '그럼 이걸 계기로 협력 MOU를 체결해 볼까요?'라며 장기적인 관점을 제안해 주어서, 예비사회적기업인 저희 입장에서는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단순한 공간 제공과 프로그램 수행을 넘어서는 협력이라고 느꼈습니다.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저는 이 협력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는 지점에서 만났다고 생각해요. 위드달은 풍부한 문화예술 콘텐츠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그걸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라는 부분이 막막할 수 있잖아요.

도서관은 반대로 공간과 사람, 그리고 홍보 채널을 갖고 있어요. 늘 사람들이 모이고, 관심 있는 분들을 모아 '이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참여해 보세요'라고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과 데이터 베이스가 있죠.

독서의 달인 9월에 '나 어릴 적에'라는 큰 축제를 위드달과 함께 진행하니, 도서관이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행사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서도 너무 좋은 계기였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도 '수봉도서관이 이런 것도 하는구나'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축제 당일에는 밖에서 '나 어릴 적에' 축제를 하고 있었고, 도서관 안에서는 힙합 공연을 포함해 층마다 약 9개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됐어요. 야외에서는 위드달이 준비한 5개의 부스가 크게 운영되고 있었는데, 부스 하나하나가 정말 예뻤어요.

지나가던 분들도 '저게 뭐지?' 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고요. 도서관이 산 중턱에 있다 보니 인공 폭포를 보러 왔다가 우연히 행사를 마주치는 분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아, 이거 수봉도서관에서 하는 행사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들어오시기도 했어요.

'나 어릴 적에'가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느꼈습니다.

아솔레터

아이들의 놀이와 어르신의 기억이 축제 현장에서 만날 때,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화가 있었나요? 그 순간을 바라보며 가장 강하게 남은 감정이나 풍경을 함께 나눠주세요.

위드달 심현주 대표

워크숍 초반에 한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다른 데 가면 옛날 이야기 그만하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계속 해달라고 하니까 너무 재밌다. 원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요.

저도 부모님이 계시지만, 막상 일상에서는 '언제 한 번 제대로 들어봐야지' 하면서도 깊이 듣지 못할 때가 많잖아요. 누구나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추억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사람이나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말씀이 참 고맙기도 했고, '이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이번 예술 워크숍에는 60대와 90대가 함께 참여하셨는데, 그분들이 서로 나이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사실 30년의 차이가 나는거라 각자의 어린시절이 당연히 달랐겠지만, 그 차이가 어색함이나 거리감을 만들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친구처럼 ‘우리의 놀이’에 대해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기억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에 웃고 맞장구 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위드달 심현주 대표

우리가 흔히 '어르신들은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이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아주 집중해서 들어주셨어요.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만 흐르지 않고, 각자 이야기를 하면서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7-8회차쯤 어느 정도 서로 친해진 시점이 되니까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 알고 보니 이런 인연이 있었네?', '그분이 내 친구인데 다음에 함께 봐요' 같은 대화들이 이어졌고,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는 새로운 유대 관계도 생겨나더라고요.

지역 안에서 같은 곳에 살고 있었지만 몰랐던 관계들이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연결되는 걸 보면서, '이게 진짜 커뮤니티의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맞아요. 저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로서 도서관이 그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늘 갖고 있어요.

나이와 상황 때문에 외롭거나 소외되지 않고, 도서관 안에서 취향을 나누고 같은 축제에 참여하고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끼리 계속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 그게 도서관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솔레터

‘나 어릴 적에’는 단순한 복지 프로그램을 넘어, 예술적 감수성을 매개로 한 세대 공감 프로젝트로 느껴집니다. 두 분은 이 프로젝트에서 예술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위드달 심현주 대표

위드달이 이 사업 안에서 맡고자 했던 역할은 '연결'이었어요. 저희는 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데, 보통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가 개인의 창작 결과물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예술을 '어떤 사람과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로 쓰고 싶었어요.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과 경험의 형태로 존재하잖아요. 이걸 함께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축제 현장에서는 몸짓과 놀이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사이를 잇는 다리가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공간 안에서 다시 펼쳐지도록 돕는 것, 그리고 어르신과 아이들, 더 나아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예술이 도구적 역할을 잘 수행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이 질문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예술의 역할이 무엇이냐”라고 하면, 정답이 없는 질문 같기도 하고요. (웃음) 저는 예술은 결국 '계속 탐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에는 정해진 답도 완성된 정의도 없잖아요. 아름답든, 거칠고 불편하든, 추악하든 간에, 그걸 마주한 사람이 '이게 뭐지?', '이건 어떤 의미일까?' 하고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느껴요.

문제집처럼 정답을 하나 찍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다시 보고 다른 각도로 접근하게 만드는 것.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예술은 어르신과 아이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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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가 지역과 세대를 잇는 문화예술의 ‘아트솔루션’으로서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사회서비스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만큼, 지역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이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먼저, 노인 1인 가구와 소외된 어르신들의 사회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이분들을 위한 문화예술의 시간과 장소를 수봉도서관과 위드달이 함께 제공했다는 점이 중요해요. 어르신들이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시면서 스스로 수혜를 받는 동시에 어린이와 지역을 위한 기획자로 변모하셨다는 점도 의미 있고요.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이 모두 함께 수혜를 받았어요. 워크숍에 참여한 어르신들, 축제에 참여한 아이들, 함께 온 보호자들, 우연히 방문한 시민들까지, 말 그대로 물 흐르듯이 수혜가 이어지는 구조였고 그 흐름 전체가 문화예술로 가득 차 있었다고 생각해요.

축제 당일 어르신들의 표정이 정말 잊히지 않아요. 제기차기를 할 때 여러 명이 함께 보자기에 제기를 올려서 탁탁 치며 날리는 놀이를 했거든요. 그때 어르신들이 아이처럼 깔깔 웃으면서 정말 해맑게 즐기셨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소외되고 힘들어 보이는 노인'의 표정이 아니라, 지역의 어른들이 환하게 웃으며 축제를 주도할 때 그 생동감은 정말 큰 영향력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하루의 축제로만 존재한 게 아니라 그 전 단계에 8회의 예술 워크숍이 있었잖아요. 저는 이 워크숍이 '나 어릴 적에'를 계기로 하나의 모델로 잘 구축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모델을 조금 변형하거나 기간을 늘리거나 다른 형태로 응용한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될 수 있을 거고요. 그렇게 된다면 사회적 가치가 있는 하나의 모델,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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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두 분께 ‘아트솔루션’이란?

위드달 심현주 대표

저희는 사회적기업이다 보니 '우리가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게 돼요. 그래서 사회나 지역 안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발견하고, 그걸 예술이라는 언어로 '이런 문제가 여기 있어요'라고 살짝 들춰내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생각해서 풀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예술가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풀어봤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라고 묻는 연결의 지점을 만들어 나가는 것. 저희가 할 수 있는 '아트솔루션'은 어쩌면 그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모든 걸 해결해주는 해답을 주기보다는, 예술을 통해 문제를 드러내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을 여는 것. 그게 위드달이 생각하는 아트솔루션입니다.

수봉도서관 권아현 사서

저는 책을 '껍데기'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스토리, 지식이고 그걸 어떻게 경험하고 나누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봉도서관에게 아트솔루션은 그 이야기와 지식을 문화예술과 접목해서 시민들의 경험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전시를 보고 공연을 보고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교류하고 이어지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 장을 마련하는 것이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아트솔루션이라고 느낍니다.

'나 어릴 적에'는 예술로 시작해서 관계로 끝났습니다.

기획자와 사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사람의 협업은 결국 '차이'를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차이가 만나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다른 한 사람은 문화복지의 감각으로 같은 장면을 달리 읽었고, 그 다른 시선들이 겹쳐지면서 '나 어릴 적에'라는 하나의 장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술은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단지,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게 하고, 혼자였던 사람을 누군가와 마주치게 합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연결의 길을 냅니다.

"다른 데 가면 옛날 이야기라고 질색하는데, 여기서는 즐거워들 해"

이 한마디가 증명하듯, 프로젝트가 만든 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었습니다. 축제가 끝난 지금도, 앞으로도 '나 어릴 적에'가 만들어 낸 선명한 길은 계속 남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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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솔루션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명확한 해답 대신,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장면을, 그 안에서 생겨난 관계들을, 희미하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작은 연결들을 남기는 것 말입니다.

📌 ‘나 어릴 적에’가 남긴 핵심 인사이트, 요점만 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