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제가 춤추며 지나간 자리는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린댄스>는 산에서 플로깅(plogging : 조깅을 하며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하며 즉흥 춤을 만들어내는 워크숍이자 봉사활동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김호연 안무가의 아이디어로 2022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요. 초반에는 본인만의 놀이이자 프로젝트였다가 점차 확대되어 동료 무용수와 시민들도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변형되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아솔레터

안녕하세요. 김호연 안무가님, 오늘은 안무가님의 다양한 작업 중 <그린댄스>를 중심으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사전에 리서치를 하며 '사회문제를 문화예술의 상상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공감되었는데요. 관련하여 예술에 대한 안무가님만의 고유한 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김호연

정말 예술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무용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움직임이나 몸짓' 하나로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 감각하는 방식, 더 나아가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예술이라면 분명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조금씩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어느 순간에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예술은 무감각을 '깨어있음'의 영역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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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중에서도 무용이라는 장르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을까요.

김호연

무용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의 몸에 몰입하고 이를 감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우리는 '나'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동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몸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깨어있는 상태로 나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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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르적 특징을 활용해 <그린댄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그린댄스>는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호연

<그린댄스>는 사실 처음부터 엄청난 목적을 갖고 출발한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한번은 신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너무 안 떠올라 영감을 얻기 위해 산에 갔어요. 그때 산속에서 즉흥춤을 추고, 쓰레기를 주웠던 과정이 제게 재미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를 카메라에 조금씩 담아낸 것이 <그린댄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혼자서는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레지던시, 워크숍 등의 형태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린댄스>가 ‘감각하게 하는 예술’의 역할로 조금씩 위치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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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그린댄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산속 플로깅 중 보통 어떤 생각과 영감을 통해 즉흥적 동작(춤)이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호연

자연이 하나의 소재이자 배경으로 위치하지만 동시에 너무 이를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즉흥춤은 '낙서' 같은 것이라고 항상 저는 얘기를 하거든요. 우리가 수업시간에 하는 낙서가 작정하고 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잖아요. 선 하나에서 꽃이 피고 발전해 나가듯, 쓰레기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나 생김새, 그날의 날씨 등이 낙서처럼 퍼져나가는 거죠. 또한 <그린댄스>를 진행할 땐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바로 '연출하지 않기, 비난하지 않기, 욕심내지 않기'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통해 프로젝트의 본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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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댄스>를 지난 2년간 꾸준히 지속하셨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생긴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호연

저는 사실 예전부터 크고 작은 환경적 실천을 이어 왔습니다. 한번은 노푸(샴푸를 쓰지 않고 머리를 감는 방법)를 했었는데, 점점 비듬이 생기거나 이마가 넓어지는 거예요. 그때 환경을 위해 평생 제 머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죠. 사실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 김산하 박사님의 “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는, 비(非)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낫다.”는 문장이 크게 다가왔어요. 

이를 위해서는 환경문제를 ‘의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살아있는 의식이 쓰레기 하나를 가지고도 실천의 영역에 닿게 하고, 더 나아가 삶의 태도를 바꾸기도 하니까요. <그린댄스>는 주변 사람들까지도 함께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꾸준히 활동을 기록하여 SNS에도 올리다 보니, 주변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의 크고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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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대단한 환경운동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일상 속에서 문제를 의식하고 이를 작게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환경 외에도 <그린댄스>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가 ‘워크숍’이라는 형태라고 생각하는데요. 워크숍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때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김호연

아무래도 ‘무용’을 떠올리면 다들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저는 현대무용을 힙합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누군가에겐 춤일 수도, 음악일 수도, 이미지일 수도 있어요. 그만큼 정의하는 것도, 떠올리는 것도 다양하죠. 그래서 워크숍에서는 먼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선(先) 경험, 후(後) 토크'라고 저는 표현하는데, 참여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죠.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몸에 집중하게 하고, 내재된 예술적 감각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아솔레터

그래서일까요. 매번 시민들의 참여도와 만족도가 높다고 들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프로세스나 비법이 있다면 살짝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호연

생각해 보니 저는 '예술이 아닌 척'하는 활동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워크숍에서 '무용'이라는 단어를 잘 언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린댄스>에서도 '일단은 걷자'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감각하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죠.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활동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예술이라는 것을 스미듯이 알게 하는 것이죠. 일종의 빌드업을 통해 '나도 예술을 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아솔레터

<그린댄스>는 크게 전문 무용수와 시민으로 참여자가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둘 간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호연

아무래도 무용수들은 기존 작업에서 축적해온 것들이 있기에 수월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시민들과 워크숍을 진행해 보면 한없이 제가 겸손해집니다. 때론 그들이 기존의 예술가보다 더 다양한 언어와 표현 방식을 구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여러 삶의 경험과 그 안에서 파생되는 예술성을 보며 저 역시 틀을 깨고 나오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아솔레터

다양한 구성원과 <그린댄스>를 진행하고 계시죠. 보통 어떻게 참여자를 모으는지, 문화재단 등과 협업하여 워크숍을 진행하시기도 하던데 그런 경우의 컨택 방식이 궁금합니다.

김호연

공지를 하기도 하고요. 먼저 연락이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무용수분들의 경우에는 제가 먼저 요청을 하기도 했죠. 재단과 함께 하는 워크숍의 경우는 반반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제안을 하거나 특정 공모에 지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단 측에서 먼저 섭외 요청이 오기도 합니다. 회사, 학교, 재단 등 요청이 들어오는 곳도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강원도에 있는 한 학교의 전교생 150여 명과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강사로 먼저 모셔주셔서 진행될 수 있었고, 자연을 소재로 하는 오브제와 관계를 맺는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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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댄스>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형태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확장되더라고요. 작년에는 >“hello world”;라는 작품을 통해 지구와 환경, 생태계를 소재로 동시대의 화두를 던지셨는데요. 해당 작품도 <그린댄스>의 연장선으로 봐도 될까요.

김호연

다른 분들은 비슷한 결의 새로운 작품으로 보시기도 하는데요. 사실 저는 <그린댄스>도 작품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서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간 <그린댄스>를 지속하며 여러 영감을 얻고, 그것이 또 다른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최소 5년에서 10년은 <그린댄스>를 지속할 계획인데, 그 뒤에 뭐가 찾아지고 연결될지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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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을 보면 '호프로바이브'의 대표이자, '댑댄스프로젝트'의 대표로 안무가님이 소개되어 있어요. 각각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고, 지속적으로 환경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 오셨는데 그 부분과도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호연

댑댄스프로젝트는 '좋아서 하는' 창작 단체입니다. 구성원들과 함께 정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호프로바이브는 사회적 가치를 찾는 활동에 포커스를 맞추는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댑댄스프로젝트' 또는 '호프로바이브' 또는 '김호연'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첫 안무가 자연에 관한 작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환경오염을 정말 단순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어요. 이후에도 작품 활동이나 리서치를 지속했어요. 그런 것들이 진열대에 올라간 기분인데, 일관된 관심이 켜켜이 쌓여가며 확장되었어요. 그래서인지 댑댄스프로젝트, 호프로바이브, 그린댄스가 서로 구분되지만 때로는 '문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솔레터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안무가님의 다른 작업도 궁금해지는데요. 최근에 구상하고 계신 작품이 있다면 간단히 공유해주세요.

김호연

저는 최근에 또 다른 비전으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하나 만들었어요. 재밌고, 즐거운 작품이나 워크숍을 만들자는 것이 최근 저의 생각입니다. 아트핏이라고 해서 예술 활동으로 마음의 건강을 찾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반기에는 캐나다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의 서든리댄스시어터(Suddenly Dance Theatre)의 협력 안무자로 소속되어 있어, 댄스필름이라는 장르 작업과 국제 교류도 활발히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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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솔레터의 주제를 관통하는 질문이자, 안무가님 그간의 작업을 총망라하는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술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김호연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변화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감성의 영역’이 중요한데요. 예술은 그런 감성적인 부분을 잘 건드려주는 것 같아요. 예술적 상상력은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때로는 100페이지의 리서치 페이퍼보다 예술 작품이 주는 영향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몸을 ‘깨어있음’의 상태로 나아가게 하고, 사회의 문제를 감각하여 실천하게 하는 <그린댄스>의 김호연 안무가였습니다.